대마도여행 2일차이자 마지막날,,,,
9시30분 호텔을 나섭니다.
호텔의 가든풍경....
한국회사가 경영하는 호텔답게 무궁화가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처음 찾아간곳은 八幡宮(하치만구)神社
일본은 워낙 신이 많은 나라....
이곳은 병사와 어부의 안녕을 비는 신사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단체사진이나 찍고...
거대한 나무가 인상적일뿐 신사에는 별 관심이 안갑니다.
하치만구신사를 나와 찾아간곳은 대마도 자료관...
임구에는 조선통신사비가 우리를 반깁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선조40년) 부터 1811년(순조11년)까지 약200여년에 걸쳐 12회 일본에 파견되었다고 합니다.
자료관 내부모습
조선통신사, 대마도의 생활모습, 대마도의 유명인물과 고서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료관을 나서며 조선통신사비앞에서.....
조선통신사는 일본내에서 상당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숙소도 가장 전망좋고 주변경치가 뛰어낭곳을 일본측에서 제공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찰로 변했지만
옛날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곳을 찾아갑니다.
지금은 鶴翼山 西山禪寺라는 안내석이 보입니다
이곳이 조선통신사의 숙소가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현재도 정말 잘 가꾸어진 정원같은 느낌입니다.
이곳 경내에 김성일선생시비(金誠一先生詩碑)가 서 있습니다.
김성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전 1590년 조선조정에서 일본의 정국을 탐색하기위해 보낸 사절단중 정사(正使)인
서인의 황윤길과함께 동인의 대표격으로 부사(副使) 로 파견되었습니다.
귀국후 보고에서 정사인 황윤길은 풍신수길의 인물됨이 범상치 아니하여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것이라 하였고 부사
김성일은 풍신은 그런 위인이 못되고 졸렬하여 감히 조선을 침략치 못할것이라고 보고하였던바 조신침략을 믿고싶지
않았던 조선의 조정은 김성일의 보고를 채택하여 2년뒤 임진왜란을 불러들인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임란후 진노한 선조는 김성일에게 허위보고의 죄를 물어 단죄코저 하였으나 김성일은 책임을 통감하여 왜적에 맞서
싸우겠노라며 진주성으로 가서 거기서 병사한것으로 전해지는데 조선통신사로 가는길에 여기서 묵었던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본 이츠하라 시내모습입니다.
이곳을 나선 우리일행은 최익현공 기년비가 있는 修善寺로 향합니다.
모두들 땡볕에 양산을 받쳐들고 이골목 저골목을 돌고 돌아
修善寺에 도착합니다.
구한말의 충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대항했던 황익현공은 일제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아
이곳 대마도까지 유배되어 단식으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에서도 자랑스런 선조를 기리며 일동 묵념....
비를 감싸고 있는 무궁화가 인상적입니다.
수선사의 맞은편 모습...
오전 일과(?)를 마친 일행은 식당으로...
이곳 역시 식당문앞에 걸린 휘장이 간판의 모두...
이어 식사가 이어집니다....
밥,국,반찬1접시... 소박한 밥상.
1인분 950엔이라고 합니다. .
식사후 잠시 구경차 들른 한 수퍼마켓 풍경입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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