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知己 친구들이 여행을 떠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친구들, 그리고 총명한 머리만큼이나 가슴이 따뜻한 친구들......
너무나도 가난했던 60년대,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고 부산 대연동의 채 완공되지도 않은 校舍에서 1965년 봄 처음 만났던 우리들....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은 비록 야위었으되 눈망울만은 총총했던 소년들이 고난의 역사를 묵묵히 견디고 살아온 무심한 세월 51년.....
머리에는 이미 서리가 내리고 머리숱은 듬성해지고 얼굴에는 세월의 훈장인얄 주름이 잡혔습니다.
그 소년들이 장년이 되어서야 8명이 모여 해외여행을 떠납니다.
부산에서5명, 경인지역에서 3명...
10월11일 저녁6시에 김해공항에서 모인 우리들은 밤10시5분발 다낭(Da-Nang)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공항을 들어서며....
김해공항의 야경...
비행기가 이륙하자 잠시 부산의 야경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집니다.
4시간여를 날아 다음날 새벽 0시20분경(한국과의 시차 2시간) 다낭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수속을 마치고 1시경 숙소인 한강호텔
(Han River Hotel)에 여장을 풀고 이내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날 아침 .....
호텔을 빠져나와 인근 거리탐방에 나섭니다..
출근시간이라 역시 거리에는 오트바이로 가득합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무작정 걷습니다.
국산굴착기를 보니 반가운 마음입니다....
호텔 옆은 이곳의 초등학교인듯 학생들의 등교가 이어집니다...
호텔 방에 돌아와 둘러본 호텔 주변 모습
한창 뜨고있는 도시라 도시 곳곳에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두 건물은 이곳의 랜드마크인듯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오른쪽이 다낭시행정타운, 왼쪽은 노보텔호텔 .
호텔 조식과 준비를 마친 우리 일행은 첫 관광에 나섭니다.
한강을 건너며 바라본 바깥풍경은 안개비에 젖어 잔뜩 흐리기만 합니다
첫 목적지인 영응사(靈應寺)에 도착합니다.
현재도 탑이 신축중입니다.
경내를 돌아 들어거니 세계최대라는 해수관음상이 우리를 맞습니다.
해수관음상앞에서 8명이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한 컷.....
친구 종렬이(金鐘烈), 용광이(金容光).....
친구 명우(李明雨)
친구 형용이(金炯龍)
버스안 풍경...
다음 행선지를 향하며....
비오는 차창으로 보이는 다낭 해변,,,,
가로수가 이국적인 풍경을 물씬 풍깁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맞는 점심....
식시후 현지가이드와 향후 일정을 논의하며....
호이안 가는길에 있는 소쿠리뗏목타기....
왼쪽부터 성영이(鄭成永),용광이, 명우, 종렬이,형용이,,,
왼쪽부터 형용이, 헌우(金憲佑), 종출이(李鐘出), 그리고 나 천고(姜天高)
소쿠리 하나에 2명씩 탑승...
간간이 비를 맞아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냅니다.
호이안 가는길에 유람선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입니다.... (註 : 노란색의 촬영일자는 디카로 촬영한 것으로 현지시간보다 2시간빠름)
아래사진의 현지시간은 오후4시2분
유람선을 타고 장인의 마을로 향합니다.도자기장인...목공예장인
장인의 거리에서....
장인의 거리에서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도착한 곳은 호이안 구시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기원전 2세기 중국의 한나라시대부터 약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4차례에 걸처 중국의 속국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호이안은 마치 중국에 온 착각을 느낄만큼 중국풍이 강해 보입니다.
이곳은 서양인들이 많이 찾는듯 합니다.
거리에서 쉽게 서양인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이제 여행의 피로가 느껴지는듯 발걸음이 무거워 집니다...
강에는 선상 레스토랑도 보입니다.
이 곳은 관운장을 모신 곳
신으로 떠받들어 진다고 합니다.... 이 역시 천년지배 중국의 영향인듯 합니다.
야시장을 둘러본후 기념촬영후 호이안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Da-Nang으로....
이튿날 아침.........
아침 일찍 일어나 한강변 투어에 나섭니다.
댠체로 모여 체조를 하고 있습니다.
건강애 대한 관심은 이곳이라고 덜하지는 않은듯 합니다.
하류로 내려가니 어제 영응사 갈때 지나걌던 현수교가 나옵니다.
길이는 부산의 광안대교보다 조금 짧은듯 하지만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듯 합니다.
교랑폭도 좁고 복층교인 광앙대교와는 달리 단층교입니다.
보도도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어선들이 출항할때 안전과 풍어를 비는 곳이라고 합니다.
노보텔과 시청사를 보며 계속 상류쪽으로 걷습니다.
중간지점에 있는 사장교를 지납니다.
멀리 용교(龍橋)가 보입니다.
왼쪽에 용의 머리부분이 고개를 들고 있고 중간부분 3개의 아치가 용의 몸통부분, 그리고 오른쪽 끝이 용의 꼬리에 해당합니다.
용의 꼬리부분에 도착했습니다.
엄청난 수의 오트바이들이 쉴새없이 다리를 건넙니다.
용교위에서 바라본 강건너편 모습...
약 2시간에 걸친 채벽 한강변 투어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 옵니다.
2일차 일정이 시작됩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찾은 곳은 다낭 박물관...
주민의 생활상을 담은 1층은 건너뛰고,
바로 2층의 전쟁관으로 향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가 궁금해서 입니다.
한국의 맹호부대 병사가 (무고한) 월남농민에게 가혹행위를 가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씁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당시의 주월 미군사령관 웨스트모열랜드 장군...
다낭지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설명입니다.
1968년2월24일 140명,1968년2월25일120명의 민간인이 미군과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슴아픈 일이긴 하나 파병초기 베트콩과 민간인의 구별이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읗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물관을 나와 베트남의 전통종교인 까오다이교의 본당으로 향합니다.
베트남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포교활동은 염격히 금한다고 합니다. 처벌수위도 상당히 높아 거리에서의 포교행위는 찾아볼수
없다고 합니다
까오다이교는 여러종교의 좋은점을 받아들여 융합한 종교라고 하며 그래서 교인들이 모두 착하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천주교 성당입니다
베트남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이제 다낭을 떠나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阮王朝 수도인 후에(Hue)로 향합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100여Km를 3시간 정도 가야합니다
길도 좁고 높은산을 넘어야하는 고된 행군입니다.....
산 아래 멀리 멋진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 진지가 있습니다.
원래 원왕조에서 성을 쌓은곳이었지만 프랑스군이 진지를 만들어 베트남 독립군과 전투를 벌인 곳이라고 합니다.
비와 구름으로 앞이 잘 안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후에(Hue)도 얼마 남지 않은듯 합니다.
베트남식 식단으로 차려진 오늘의 점심....
이제 본격적인 후에의 원왕조 탐방입니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 가운데 힘든 탐방이 이어집니다.
이곳은 원왕조의 2대왕인 민망왕(MINH-Mang)의 묘역입니다.
민망왕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700명의 후궁과 1000명이 넘는 자식을 두었다고 하는데 하도 민망해서 민망왕이라고 하는 우스개도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후에성(Hue Castle)에서 만난 베트남인 가이더는 민망왕은 평소 5-6명의 후궁과 날마다 동침했는데 그 중 3명정도가
임신을 했다라며 능청을 떨었습니다.
묘역은 상당히 넓습니다.
여러개의 문을 지나야 무덤에 이르게 되는데 그 무덤이란게 덩그라니 문밖에 없어 방문객을 허탈하게 만듭니다.
민망왕묘에서 다시 십여분을 달려 12대왕인 카이딩의 묘에 도착합니다
카이딩왕은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재위시 자신의 무덤을 꾸미는데 온갖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려 백성들의 원성을 샀지만 어쨌던 자신이 만든 무덤에 붇히기는 한 모양입니다.
후에(Hue)를 두고 "가도 후회,안가도 후회'라고 한다는데 안가면 정말후회하는게 Hue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후에성의 국기게양대....
원래는 원왕조의 깃발이, 지금은 베트남의 국기가 24시간 펼럭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갔던 10월13일 오후 억수같은 빗속에서도 국기는 게양되어 있었습니다.
후에성은 정말 넓습니다 . 가로,세로 각1.5km라고 하니 대략 68만평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의 경복궁이 대략 13만평이라고 하니 그 넓이를 기늠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 유명한 중국의 자금성도 넓이는 22만평정도(동서760m, 남북960m)에 불과하다고 하니 후에성은 정말 넓다고 힐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에성을 미니 자금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건축물에 그 답이 있을듯 합니다.
후에성은 자금성과 달리 상대적으로 소규모 건축물들이 넓게 분포되어 있고 해자의 면적도 엄청나서 건축물 규모만 따진다면 자금성에
비할 바가 못 될것 같습니다.
응우옌왕조(阮朝)는 1802년에 성립된 베트남의 최초이자 최후의 통일왕조였습니다. 1945년 멸망할때까지 13명의 왕이 통치했으나
왕조성립때부터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끊임없이 프랑스에 시달렸으며 수차례의 전쟁끝에 1883년에는 프랑스의 완전한 식민지배를
받았으니 실제 독립왕조를 이룬 기간은 50-60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2대 민망왕(재위1820-1840)때 전성기를 누리고 그 이후에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우리나라의 구한말처럼 왕실은
있으되 허수아비에 불과한 허울뿐인 왕조였습니다. 일본이 프랑스의 식민지배기술을 전수받아 우리나라에 다고 하니 씁쓸하기만
합니다.
태화전 내부입니다. 왕의 집무실격입니다
세조묘(世祖廟)입니다.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인데 13명의 왕중 10명만이 위패가 모셔져 있고 3명은 쫓겨났거나 프랑스등으로 도망친 왕이라 합니다.
빗속에서도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베트남 가이더는 서너곳만 둘러보고 서둘러 해설을 마칩니다.
후에성 관람을 마치고 후에에서의 만찬입니다.
베트남 식당사장은 우리더러 건배하라며 사진을 찍어주는 센스를 보입니다.
이튿날 아침.....
어제의 관람이 아쉬워 후에성을 다시 찾아가 보려고 나선 길...
밤새 내린 비바람에 거리는 어수선하고 후에성으로 들어가는 교량은 불어낭 향강(香江)수위에 찰랑거립니디.
향강을 건넜다가 다시 되돌아 나옵니다.
후에성을 포기하고 대신 시내를 둘러봅니다. 호텔, 운동장,경찰서등...
우리가 묵었던 Romance Hotel
후에를 떠나기 위해 호텔을 나서기전....
다시 다낭을 향해 달립니다.
후에에서 다낭으로 가는 길옆 풍경들....
여행중 계속 내리던 비가 이제는 멎는듯 합니다.
먼 산의 구름도 걷하고.....
다낭 해변에서.....
떠날때까지 시간여유가 많아 해변에서, 강변에서 여유를 즐깁니다....
해변에 이어 한강변에서.....
저녁식사후 여행의 피날레인 야간 유람선관광이 이어집니다....
친구들의 열창으로 밤은 깊어 갑니다
야간 유람선 관람으로 우리들의 여행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 공항으로 이동후 몇시간의 기다림후 우리는 01시05분발 Jin Air에 올랐고 토요일 아침7시10분에 김해공항에 착륙,공항내
한식당에서 아침을 함께한 후 각자의 집으로 흩어 집니다.
며칠전 떠나왔던 그 곳으로.....
함께 한 모든 친구들 고맙습니다.... Bye,... bye,,,,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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